한국 보치아의 '살아있는 전설' 정호원(40·속초시장애인체육회)이 마지막 아시안패러게임(APG) 무대를 마쳤다. 2002년부터 24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보치아를 이끌었던 정호원. 마지막 무대는 아쉽게도 메달 없이 끝났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장애인체육의 역사로 남았다.
정호원은 21일 일본 나고야시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동메달 결정전에서 다카하시 가즈키(일본)에게 1-5로 패했다. 앞선 준결승에선 싱가포르 선수를 상대로 0-4로 끌려가다 마지막 4엔드에서 4점을 몰아쳐 타이브레이크까지 승부를 끌고 갔지만 끝내 승리하지 못했다.
경기 후 정호원은 "오늘뿐 아니라 이번 대회 경기가 다 잘 안 풀려서 많이 아쉽다"라고 털어놨다. 준결승 막판 추격에 대해선 "크게 지고 있어서 표적구를 멀리 보내는 전략을 썼는데 그게 맞아떨어졌다"라고 돌아봤다.
지난 21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보치아 경기에서 활약 중인 정호원. 사진=공동취재단
이어 그는 "이제 좀 내려놓고 싶다"라며 "파리 패럴림픽을 다녀오고 1년쯤 지나서 그런 마음이 커졌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마지막 대회라 금메달을 따서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게 많이 아쉽다"라며 아쉬워했다.
정호원은 한국 보치아의 한 시대를 풍미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중학생 시절 체육 교사의 권유로 보치아를 시작한 그는 2002년 16세의 나이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대회까지 아시아 장애인 종합대회에 일곱 차례 출전했다.
APG가 출범한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는 다섯 차례 대회에 모두 출전, 2014 인천 대회 페어, 2018 인도네시아 대회 개인전, 2022 항저우 대회 페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 차례 정상에 올랐다.
패럴림픽에서도 한국 보치아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08 베이징과 2020 도쿄 대회 페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와 2024 파리 대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보치아가 1988 서울부터 2024 파리까지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을 수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1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보치아 경기에서 활약 중인 정호원. 사진=공동취재단
공교롭게도 정호원이 마지막 APG 경기를 치른 이날, 국회에서는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열악한 훈련 환경이 도마에 올랐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증장애인 국가대표를 위한 수중 회복 시설이 없어 간이욕조를 이용하는 등 부족한 훈련 환경을 지적했다. 이희룡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은 관련 시설 예산 1억2500만원을 요청했지만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성과에도 선수들을 위한 시설 개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정호원은 훈련 환경을 은퇴 고민의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 보치아의 열악한 지원 현실이 국회에서 지적된 날, 24년간 대표팀을 이끌어 온 전설이 마지막 APG를 마쳤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패럴림픽 출전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신 "이제는 후배 양성에 신경을 쓰고 싶다"라며 새로운 목표를 밝혔다.
16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소년은 어느덧 40세의 베테랑이 됐다. 24년에 걸친 아시아 장애인 종합대회 여정은 메달 없이 끝났지만, 정호원이 한국 보치아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작지 않다. 아시아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넨 전설은 이제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